김수영 시인과 나
빡빡 깍은 머리의 호리호리한 남자가 김수영 문학관 대강당을 들락달락 할 때만 해도 거기 직원인 줄 알았다
'시여, 침을 뱉어라' 라는 연극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다 김수영 시인의 시 제목이며 그에 관한 연극제목이다 직원인줄 오해한 저 남자이름은 마광현 어느정도 경력의 소유자인지 알 수는 없고 이 연극의 주인공이다 영화가 아닌 연극관람을 해 본 적은 거의 없다 그도 그렇고 소극장보다 더 허름한 문학관 대강당인 것도 큰 기대감을 주지 않는다 일인극 형식의 구성이다 10분정도 늦게 들어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선 채 10분 몰입하자마자 눈물이 쏟아진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연극 사이사이 나오는 70년대 음악들 주인공의 외침 외침을 돋보이게 해주는 주인공의 뒤틀린 표정연기 그의 몸짓 그 가운데 하나를 꼬집자니 그럴 수가 없다 전부 다다 특히 주인공은 당시 김수영 시인의 고뇌를 참 잘 표현한다 그래! 일그러지는 표정과 타오름을 연기할 때 날 울린거야 난 순간 팔장을 끼고 고개를 떨군다. 번갈아 가며 눈물 훔치는 손이 쉴 새 없이 바쁘지만 무대위 약한 조명외에 전등이 모두 꺼진 강당안에서 눈물을 들키지 않은 게 얼마다 다행인지 흰색셔츠를 느슨하게 걸친 주인공의 등을보니 진한 아픔이 묻어 나온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 나가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을 누른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4.19의거 그리고 5.16혁명 당시의 자료들을 보여 주는 영사기는 미친듯 돌아 갔다 빠르게도 거꾸로도 돌아가며 눈물로 흐려진시야를 자극했다 영사기 속 인물들 중 유약해 보이는 한 남자가 마치 김수영 시인이 살아서 꿈틀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는 멀리서 스크린에 보이는 배우나 그들의 연기 그 밖의 모든 것들이 튀어 나올 수 없도록 묘하게 막아 논 한 겹 앞이라서 생생하나 생생하지 않은 전달이다 이런 영화와 달리 몇미터 안 되는 무대 사방을 접하는 연극은 영화와 많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더 실감했다 사이사이 김수영 시인의 역할을 맡은 주인공 말고 3명의 또 다른배우 각각은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동떨어진 이 시대 연기를 재미있게 했다 자칫 김수영 자체의 고뇌가 전달되는 무거움을 관객들에게 약간이나마 덜어 주려는 무대위의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눈물로 뜨거웠던 내 마음이 다는 아니지만 약하게 식어갈 무렵 배우들은 나란히 섰다 인사를 하며 마지막을 알렸고 전등이 켜졌다 얼룩졌을 얼굴때문에 얼른 밖으로 나왔다
도봉구에 김수영 문학관이 번듯하게 모습을 갖춘 후로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는 걸 한참동안이나 몰랐다 또 지금 그 곳에서 하고 있는 그러니까 김수영 시인, 그의 세계를 지역주민과 나누고 싶어하는 강의가 있음을 알고 얼떨결에 8강중 6강을 마쳤다 관심이 없었던 그 시인과 가까이 하고 싶어서 관련된 강의를 들은 건 아니었다 그저 문학관을 이용하고 싶었고, 습관처럼 머리를 식히러 가는 우이공원 말고 가끔 문학관 주변 좁다란 원당공원을 배회하고 싶어서였다 더 중요한 건 내 가슴과 김수영 시인의 가슴이 맞닿으려면 좁혀질 수 있는 가슴 속 감성거리가 막막하고 난해해 끝없는 사막같은 복잡함이기에 관심이 없었다
강의를 6번 들으면서 무관심의 강의만큼 김수영 시인에 관해 품고 있었던 무관심의 거리가 한 발자국 좁혀진 이유는 "김수영 시인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골몰하지 말라 그리고 그가 썼던 시 속의 원뜻이 굳이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좁은정의를 하지말라" 는 이생진 시인의 강의를 듣고부터였다 그리고 박정근교수 강의 시간에 지목을 당해 김수영 작 '하..그림자가 없다' 일부를 낭송했다 조용조용하게 낭송했던 나와 다르게 같은시를 속사포처럼 빠른속도로 외치며 토해냈던 연극의 주인공이 날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우연한 기회에 본 저 연극때문이었다
그렇다 누군가도 내가 낙서해 논 글과 시 나부랭이를 내가 말하고자 하는 동그라미에서 날카롭고 역하게 세모로 해석하기도 할 것이다 어찌 탓할 수 있으리오 그들속에 담는 건 그들 몫인 것을 47세에 요절한 김수영시인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본 나도 어느순간 직선에서 그가 모두에게 원할 지 모르는 완만한 곡선으로 성큼 한 발자국 더 크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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