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자작시

가로수 너는

공효진* 2016. 8. 11. 22:36

 




집주변 곳곳에 키 큰 나무들이 듬직하게 서 있다

나무의 발치쪽엔 우리가 쉴 수 있는 벤치나 평상이 있다

허리춤은 내가 사는 집의 색 바랜 담벼락과 나란하다

가슴엔 가로등이 안겨 있어 난 쉼쉰다

머리는 헝클어져 하늘을 향해 있다

그런 모양을 하고 울고 웃으며 산다


길가에 쭉 뻗은 나무들도 닮은 꼴이다

머리위로 쏟아지는 따가운 해를 넓적한 이파리들이 막아도

여러 갈래의 눈부신 빛줄기는 이파리 사이사이로 쏟아진다

곧은 자세로 서서 우리가 놀아주지 않아도 낮엔 해와 벗삼고,

밤엔 별과 달과 같이 잠들지만 거리의 가로수는 소리 없는 한 여름의 몸살을 앓는다


폭염에 기대어 있는 요즘, 가로수는 힘겹다

비교적 정해진 틀에서 움직이는 내가 오고 가는 길은 별 변화가 없다

그 길에서 줄지어 선 가로수들, 봄이면 만개하는 벚나무,

흰 눈이 내린듯도 하고 흰 쌀밥을 나무에 흩뿌려 놓은 것 같은 이팝나무,

쾌적한 느낌과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은행나무,

외관상 보기 좋아 마을 입구에 많은 느티나무,

매연에 강하고 토양을 정화시킨다는 플라타너스..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나무들이다


어둠이 흔들리는 여름밤, 창밖의 플라타너스는 불빛에 반짝인다

내가 두른 팔이 남을 정도로 키가 크고 홀쭉하다

다른이가 와 말을 걸어도, 침을 뱉고 화풀이를 해도, 곧은 몸으로 선 채 눈을 감는다

날이 밝아 눈을 뜨면 혹시나 있었을 밤의 추한 기억을 잊고

태양 아래서 언제 허리가 잘려 나갈지 모를 자신을 태운다

그렇게 만들어진 풍성한 그늘에 벅찬 난 잠시 스쳐간다


여름과 함께 끈적임을 던지고 나면

어딘지 모를 긴 나락으로 날 떨어뜨리며 멈추게 하는 은행나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녀가 두른 치마의 흔들림이 가을 바람과 함께 그 해 여름 환하게 밀려왔던 파도 같겠지

깊은 슬픔같은 병약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