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 있는 길
지금, 서 있는 길
며칠 수줍던 하늘은 온 데 간 데 없고, 여운없는 구름이 띄엄띄엄 하늘을 덮는다.
그래도 아! 가을인가... 가을이 날 손짓한다.
선글라스 너머 진초록은 금방이라도 비를 만날 것만 같이 흐리다.
색 감각을 교란시키는 선글라스 때문에 우이공원의 풍광은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다.
선글라스를 치켜 올리자 본연의 색이지만 눈이 부시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쓴다 .
집에서 별로 멀지 않지만, 집 나서기가 귀찮았다.
그 생각을 뿌리치고 행동으로 옮겨야 갈 수 있는 우이공원엘 참 많이 다녔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편은 아닌데
여차하면 돌발적인 행선지로 삼았던 나에겐 특별한 공간이 우이공원이다.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손재주가 똑같은지
자주 가도 오랜만에 가도, 전지된 나무들의 모양이나 냄새, 잔디의 길이, 곳곳의 정돈된 분위기가 변함 없다.
다만 짧다란 산책로의 오르막이랑 내리막의 폼새만은 다르다.
공원에 가면,
천천히 다시 돌아올 지점까지 걸어 갔다가 꼭 되돌아 내려오면서 때때로 다른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생각 외로 더운 날씨여서
한 방향만 걷고, 벤치에 앉아 들고 나간 책을 쉰 장 정도 읽고 일어섰다.
찬 바람은 어디가고 더운 바람이지.
나올 때까지만 해도 팔꿈치 위 길이의 옷은 지나친 여름옷 같다는 생각에
손목과 팔꿈치 중간까지 오는 길이의 옷을 걸쳤는데 무척 덥다.
공원의 구석 그늘도 덥긴 매한가지다.
들어올 때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던 벤치는 어느새 빈 자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한적한 것을 보면, 나처럼 더워서 휴가를 미뤘던 사람들이 도심을 빠져 나간 게 분명하다.
공원이 아니더라도 가면서 보는 길과 되돌아오면서 보는 길은 다르다.
가면서 마주하는 길과 오면서 마주하는 길이 다름은
"지나간 과거는 점점 길어졌으나, 다가올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며
"90의 언덕에 서면 삶의 계획이 2년이나 3년 짧아진다" 는 김형석님의 말처럼 마치 인생같다.
희한한 건 해결하기 복잡한 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면
가고 오는 길 내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오늘 아니면 다시 없을 시간과 장소가 무의미해지고
나만의 공간에 간 의미가 없어진다.
매번 달랐던 가는 길과 오는 길의 느낌이 그냥 똑같다.
가는 길은 나에게 현재지만 과거같다.
몸은 현재에 있고 생각은 과거와 사이좋게 나뉘어 있다.
눈으로 스치는 모든 것이 뒤로 지나가기 때문에 비록 현재지만,
사진을 찍을 때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시간에 좀전의 모든 것들이 과거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오는 길은 가는 길의 반성같다.
가는 길을 거치면서 부터 도착할 때까지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 내가 울기도 웃기도 했을 테니,
돌아 오는길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집에 올 때까지 또 다시 웃기도 하고,
"아까는 그게 아니고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워도 한다.
그래서 오는 길은 가는 길의 반성같다는 게다.
내 과거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중간에 희미해서 보이지 않던 내가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던 어느 때를 빼고,
그 때보다 더한 푸념과 후회만 반복하며 예까지 온 것은 아닐까.
모든 게 계획한 대로 되진 않았지만, 계획 밖의 행운이 온 것도 있다.
추억과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보다 어쩌면 내게 필요한 건 비록 슬플지라도 지금이다.
지금이 행복하면 푸념도 후회도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