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백지상태

공효진* 2016. 11. 11. 22:23

 





높은 하늘에 찌르레기가 몰려 다니는 것처럼

넓은 도로엔 은행잎이 뒹군다

차로 지나치며 뒤를 보니 바람과 자동차의 속도 때문인지

얼만큼은 바퀴에 밟히고, 얼만큼은 더 높이 흩어진다


중환자실의 아버지는 호흡에 큰 높낮이를 보이던 때와 달리

숨소리는 잔물결 소리, 모습은 또 잔물결의 흐름같다


가족들 각자의 생활이 뒤로 미뤄지거나 멈춰지고, 

긴장이 감돌던 내 주변 상황은 3주 전보다 아버지가 평화를 찾으며 조금,

아주 조금 완화가 됐다


언니 부부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일과가 틀어지고

또 다른 새로운 일이 생기고

지금이 이러니 과거와 미래까지 혼돈에 빠져 다른이에게 원망이 생긴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자.. 고 떨칠수록 정신이 마비된 듯 하다

내가 왜 이럴까, 고립된 듯 하다

활자가 채 마르지 않아 기름 냄새가 나는 신문이 코 앞에 있는 것과 같이

막다른 골목 끝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나는 늘 즐거운 사람인줄 알았다

설령 슬픔을 손에 쥐고 있더라도 즐거운 사람인줄 알았다

즐거움을 만들어 표출하는 방법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언제 어느순간 이런 게 꺾였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그렇다

회복도 늘 혼자 했다

누구의 도움보다 자신을 잘 아는 나만의 방법이 빨라서였다


아버지의 병환을 비롯해 여러가지 스트레스.. 오래 갈 것이다

이 스트레스군들을 물리치기엔 모두 내 힘으론 역부족이다

단지, 지금 나와의 거리에서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기만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