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을 안 하니까 늑장을 부린다.
운동하는 날이면 9시 전에 서둘러 나간다.
식구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빠져나가고 나면 9시가 좀 못 된다.
딸과의 입씨름이 오고갔다.
그 시간은 10여초에 불과했지만 마음의 냉랭함은 몇 배는 넘는 것 같았다.
입씨름에서 오고 간 말들을 정리해 보았더니 서로의 편안함이 약간의 도를 넘었던 것 같다.
스물 셋 나이의 딸도 나와 같은 결론일까.
북 아일랜드 출신의 미녀가수 노래를 크게 틀었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였다.
딸이 출근하는 소릴 듣지 못했다.
오히려 휴대폰의 맑은 알림음이 내 귀를 자극했다.
식전부터 누구의 호출인가 보니 딸의 사과문이었다.
"엄마, 갔다올게" 대신
"어무이 미안혀유 내가 요즘 다이어트 때문에 못 먹고 스트레스 받아서 엄마한테 화내나봐.
용서혀 짜증 안 낼게" .
서로 만만하지 않은 모녀이다 보니 초장에 친절을 의식해야 한다.
말도 가려서 해야겠다.
자식의 노여움을 끌어올리지 않도록.
내가 이런 마음으로 지 들을 대하려고 노력하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러면서 지들은 누구에게도 이런 것들을 고자질 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공을 들이기나 하는 건지.
나쁜 지지배.
상처입은 몇 겹의 허파를 끌어안아 줄 장소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집도 오늘은 안성맞춤이 아니다.
차를 몰고 나간다.
아침 점심대신 팥빙수 곱배기를 비우고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정우성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감시자들>을 보러 롯데 시네마에 간다.
정신없이 빠른 화면에 그만 이유없이 내 눈꺼풀도 정신을 잃는다.
얼만큼 잤을까 뽀얀 얼굴 때문에 눈동자가 더욱 까만 한효주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매우고 있다.
설경구의 박하사탕이 살짝 겹치는 라스트 신으로 치닫는다.
재밌었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