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언니네 그림자

공효진* 2016. 12. 27. 23:15

 




4일 전, 찜질방에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고  언니네 가족이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3주동안 친정은 북새통이었다


엄마의 방은 거실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랑 늘 거실에 깔린 큰 카펫 위에 두툼한 이불을 펴고 잤던 습관 때문이다

두 분이 나란히 누웠다가 등허리가 아프면 다시 앉았다가 티비를 보며 뒹굴거리다 주무셨다


문간방의 주인은 친정 일을 봐 주는 도우미 언니고


그 집 식구들의 개나리 봇짐들이 방 하나를 점령했고


침대 아니면 잠을 자기 힘든 형부가 언니랑 안방을 점령했고


남은 방에서 조카가 자도 되겠으나 이모 집으로 가겠다며 우리 집으로 왔다


삼시세끼 따끈따끈한 밥 먹는 걸 이념처럼 생각하는 엄마와

아침은 토스트와 커피 한 잔, 점심은 건너 뛰고, 5시 쯤 이른 저녁을 먹는다는 언니 부부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그야말로 먹이려고 쫓아 다니는 자와 먹는 게 괴로워 도망다니는 자들의 전쟁


언니 부부가 우리 집에 있었으면 딱 좋았을 걸


돌아서면 또, 돌아서면 또  먹으라고 성화를 하는 엄마는 내가 봐도 부담스럽다

부담이라는 것이

먹거리나 먹으라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먹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엄마다

기어코 권하면 먹는 끝을 봐야 되는 엄마의 불편한 사랑의 표현 방법이다


"엄마.. 안 먹는데는 다 이유가 있어

제대로 된 밥상에 앉아 단지 밥을 안 먹는다 뿐이지 저저저 저거 봐 딴 거 먹잖아"

"그러니..?"

"그럼, 즈그집 가봐 저런 거 우찌 먹겠냐고 걍 놔 둬, 한 두끼 안 먹는다고 안 죽어"


이랬어도 엄마의 포기를 모르는 먹이고픈 집착은 언니네가 가기 전까지 계속됐다


엄마는 식구들이 들어오는 다 저녁 때 나가는 것도 엄청 싫어한다

맥없이 그냥 휘휘 동네 한 바퀴 돌기도 하고 큰 길 하나만 건너면 하나로 마트고

저 뒤로 돌아 계단타고 건너가면 이마트가 있으니 사람구경도 하고,

길거리 음식도 먹고, 살 거 있음 살 수도 있지

해 떨어지고 그런데 가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나는거 마냥 낯빛이 확 변한다

내 집에 있는 사람은 내 눈 앞에 보여야 된다는 통행금지 시대의 강압적 표정이다


그렇다고 날이면 날마다

젊은사람들이 엄마의 사고를 인정하고 따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화장실에서 오랜시간 나오지 않으면

화장실에 빠졌을까봐 그러는지 찾아 와 문을 열어 확인 할 정도니

감시자도 아니고 숨이 막히겠지


울 엄마니까 웃으며 넘어간다...


그에 반해

조카는 마침 일을 그만 둔 딸내미랑 하루 해가 짧다

별 간섭 안 받는 이모집에서 홍대로, 건대로, 강남으로, 명동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밤 낮없이 디립따 싸돌아 다니니 지칠 줄 모르는 젊음이 좋다  

일이 바쁜 아들은 둘 사이에 끼지 못 하고, 만끽하고 다니는 게 부러워 줄을 맛인 거다


나도 저랬을까, 기억이 안 난다

싸돌아다니질 않았으니 기억이 없는 거다


양쪽 집에서 장대같이 큰 사람들이 얼씬거리며 다니다 바다건너 갔다

집 안이 허전하고 휑하다기 보다 안정감이 들고 제대로 된 일상을 찾았다


나는 평생 손님들을 집에 들이며 왁자지껄 사는 일상을 생활화 하진 못 할 거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도 아파트 복도를 걸어 집으로 가다

열린 현관문에 드리워진 대나무 발을 걷어 올리고 얼굴을 내밀며

"준영이 엄마, 들어와요 차 한 잔 하게~" 하며 이웃이 손짓해도

"아, 네~" 라고 대답만이지 8년 살면서 들어간 적은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접을만큼이 안 된다

지금은 더 더군다나 앞 집하고도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다다를 때까지 머리를 숙이고 신발만 쳐다보다 내리니..


뭐 나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친정도 좋고, 동생도 좋은데 내심 언니는

시국이 어수선하고 어딜가나 사람많은 이곳보다 땅덩어리 넓은 조용한 그 나라에서

지금쯤 마음이 한가롭고 편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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