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금방 찬물에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내 눈에, 오월의 모든 것이 탄력있어 보이 듯, 아마 피천득님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거다
어린잎은 빛나고 우거질 이유가 있는 나무에 빠져들며 봄길을 걷는다
발길을 내딛다 순간, 내 긴 그림자는 나와 같이 멍하니 서서 우거진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부대끼는 소리를 듣는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마음도 봄바람에 흔들린다
설레는 장미터널
차를 타고 금방 다리 하나를 건너 눈감고도 갈 수 있는 곳
연둣빛 사이로 가느다란 실금처럼 햇빛이 부서진다
우거진 숲은 더 할 나위 없거니와
몇 미터 안 되는 작은 장미터널의 이끌림이란 참 위대한 감정이다
스쳐가는 게 아까워 내리고 싶지만
뒤따라 오는 차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재빨리 셔터를 누르는 수 밖에
연둣빛이 흐드러진 오월을 느끼고픈 충동에 어쩔 수 없이 고민하다 멈춘다
내 모습은 정지된 티비 화면과 같다
이런 날, 날 맡길 만 한 벤치가 없다면
굴곡없이 웬만큼 반듯한 돌 위라도 앉아 한동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꽃은 아직 이르지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무성해질 그곳은
걸어가면 차를 타고 갔을 때보다 더한 설렘, 그보다 더한 미침을 경험 할 수 있을텐데
장미가 피고 질 때까지는 시간이 있어서 미칠 기회는 많다
특별히 봄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없다
난 추운 겨울이 싫다
아마 그래서 겨울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단순함이었을 거다
친구들도 겨울을 싫어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이제부터 동면이다, 봄되면 보자구" 라는 말에 익숙하다
볼 일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왠지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겨울
마지막 잎새까지 다 내던져야 했던 삭막하고 건조한 나무들
그들도 기다림이 있을 거다
나처럼
긴 기다림 끝에 맞은 봄
시린 추위가 물러가고 돋아 난 새순이
흐린 연둣빛으로 물들다 기름진 초록으로 변한,
밖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솔솔 부는 봄바람 덕에 같이 있는 사람도 불안해 하지 않는 봄은,
오월은......
내 안에 흠씬 스몄는데 사람들은 초록보다 훨씬 진한 초록을 입은 날 보며 오월을 느낄까?
그렇게 해마다 오월은, 봄은 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