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자작시

오월을 갖다

공효진* 2017. 5. 15. 21:07






'오월은 금방 찬물에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내 눈에, 오월의 모든 것이 탄력있어 보이 듯, 아마 피천득님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거다

어린잎은 빛나고 우거질 이유가 있는 나무에 빠져들며 봄길을 걷는다

발길을 내딛다 순간, 내 긴 그림자는 나와 같이 멍하니 서서 우거진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부대끼는 소리를 듣는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마음도 봄바람에 흔들린다


설레는 장미터널

차를 타고 금방 다리 하나를 건너 눈감고도 갈 수 있는 곳

연둣빛 사이로 가느다란 실금처럼 햇빛이 부서진다

우거진 숲은 더 할 나위 없거니와

몇 미터 안 되는 작은 장미터널의 이끌림이란 참 위대한 감정이다 

스쳐가는 게 아까워 내리고 싶지만

뒤따라 오는 차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재빨리 셔터를 누르는 수 밖에


연둣빛이 흐드러진 오월을 느끼고픈 충동에 어쩔 수 없이 고민하다 멈춘다

내 모습은 정지된 티비 화면과 같다

이런 날, 날 맡길 만 한 벤치가 없다면

굴곡없이 웬만큼 반듯한 돌 위라도 앉아 한동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꽃은 아직 이르지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무성해질 그곳은

걸어가면 차를 타고 갔을 때보다 더한 설렘, 그보다 더한 미침을 경험 할 수 있을텐데 

장미가 피고 질 때까지는 시간이 있어서 미칠 기회는 많다


특별히 봄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없다

난 추운 겨울이 싫다

아마 그래서 겨울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단순함이었을 거다

친구들도 겨울을 싫어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이제부터 동면이다, 봄되면 보자구" 라는 말에 익숙하다


볼 일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왠지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겨울

마지막 잎새까지 다 내던져야 했던 삭막하고 건조한 나무들

그들도 기다림이 있을 거다

나처럼


긴 기다림 끝에 맞은 봄

시린 추위가 물러가고 돋아 난 새순이 

흐린 연둣빛으로 물들다 기름진 초록으로 변한,

밖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솔솔 부는 봄바람 덕에 같이 있는 사람도 불안해 하지 않는 봄은,

오월은......

내 안에 흠씬 스몄는데 사람들은 초록보다 훨씬 진한 초록을 입은 날 보며 오월을 느낄까?


그렇게 해마다 오월은, 봄은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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