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선물의 용도

공효진* 2017. 2. 5. 15:12

 





용림언니가 준 원두커피를 뜯었다

내려서 보리차 마시듯 했음 벌써 바닥이 났을텐데

그 흔한 커피 메이커도 없거니와 즐기지 않아 몇 년을 모셔논 건지 모르겠다


받았을 때만 해도

커피를 내려 기분이라도 내자 싶어 커피 메이커를 사야지 했었는데


현지에서 바리스타들을 교육시키는 강사인 조카가

작년 겨울 뉴질랜드에서 건너 와 우리집에 있을 때

내려서 마셔도 되겠느냐 물으며 보여줬더니 원두커피 자체의 가스가

다 빠진 상태라 맛은 없다며 대신 일반 커피찌꺼기 하고 향이 다르니까

방향제나 탈취제로 쓰라고 말했다


용림언니가 미국에서 사다 준 저 원두커피 뿐 아니라

이과수 커피다 뭐다 해서 받은 건 많았다

자기가 좋아해선지 늘 이런 걸 선물했는데 난 별로라

그동안 어떤식으로 처분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카페 주인인 혜란이에게 부탁만 하면 언제든 커피 찌거기를 갖다 줘서

화초 거름을 하든, 집 안 곳곳에 놓든 잘 쓴다

화초 거름은 받아서 말리지 않고 젖은 채 썩혀서 화분의 흙과 섞는데

그렇게 정성을 들여도

얼마 안 되는 우리집 화초는 군데군데 멍들어 있고 다 시들시들 아파 보인다

집 안이나 차에 두고 싶으면 수분을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잠시동안 누릴 수 있는 향이 커피향 같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 


용림언니에게 받았던 원두커피를 못 먹을 바에야

두 세숟가락 씩 넣어서 차에다 갔다 놓을 마음으로 우선 부직포 주머니를 샀다

육수를 낼 때 쓰는 건데 생각보다 촘촘해 미세한 커피 가루가 새지 않는다


세 개를 만들어 두 개는 차에, 한 개는 은지방에 뒀다


집에선 글쓰기 위해 컴퓨터가 있는 은지방에 자주 들어가고

집 밖에 나갈 땐 차를 타고 움직이니 내가 만든 냄새를 끌고 다니고 싶었나


안팍에서 자극받는 냄새가 이랬으면 했을 거다 


그래도 나나 옷에 그 향이 젖진 않는다

커피 담은 부직포백을 크지도 않으니 안주머니에 하나 넣고 다닐까 보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냄새는 남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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