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이 열렸다
새해 첫날이어도 그냥 휴일이라
실컷 퍼자고 부시시 일어나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작년만 해도
눈 한 번 마주쳤던 친분이 있는 사람들까지 일일이 스마트폰에서 연하장을 꺼내
예쁜 말 한 줄이라도 진심을 담아 정성껏 써 보냈는데
지난 연말엔 모두 남의 일인 양 건네받은 덕담에 답장만 보냈다
둔감해졌는지, 열정이 녹아내린 건지, 아님 늙은 건지
팔을 걷어 붙이고 뚝딱
어무이가 좋아하는 카레, 잡채, 불고기, 들기름을 넣어 시금치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서
전 날 만든 진하게 달인 생강차랑 바리바리 싸놨다
추접스럽게 다니는 걸 싫어하시니
구불구불 머리 손질도 하고, 환한 립스틱을 바르고 집을 나섰다
아부지를 향한 어무이의 눈물이 많이 줄었다
돌아가신 아부지의 풍경이 사라진 친정엔 덩그러니 어무이 홀로 계신다
아직 건강하시니 어느 자식이 됐든 함께 사는 걸 마다 하셔서다
같이 생활하던 입주도우미는 어무이와 묘한 신경전으로 말다툼을 하고
입주한지 3년만에 개나리 봇짐 4개를 꾸려 나갔다
얼만큼 서로 맞지 않았는지 몇 번이나 내보내고 싶은 맘을 꾹꾹 참다
그녀가 사라진 어무이만의 공간에서 어무이는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며 춤을 추셨다
입주도우미를 들이기 전
일주일에 2번, 4시간 일을 봐주던 파출부가 다시 온다
청소, 빨래, 약간의 반찬만들기가 해결되면 어무이는 다른 건 필요없단다
차려 논 밥을 받아 먹는 것보다,
내 손으로 차려 먹는 게 왔다갔다 운동도 되고 좋다며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안스럽게 생각하지 말자
뭐가 됐든 누군가에게 어무이를 맡기는 것보다
건강하시니 더 건강해지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하자
어무이는 맛없는 것도 맛있게 먹는다
그런 복 때문에 아부지 일이 잘 되는 거라고 누군가 그랬다는데
손가락을 젓가락 삼아 김치도 쭉쭉 찢어 먹고, 갈비도 뜯고, 구운 생선도 발라 먹는다
언젠가 한의원에서 진맥을 하는데 어무이가 나보다 더 건강 체질로 나왔다
그래선지 내가 무거운걸 들고 있으면 휙 빼앗는데 우스개소리로 힘이 장사다
마음이 놓였다
어무이의 건강을 올해도 기원하면서
정초라고 어무이와 밥한끼 먹으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면서
마음이 풍요로웠다
아부지도 함께였으면 참 좋았을 걸